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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앙교육은 생각근육을 키우는 것이다(양병희목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앙교육은 생각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양병희목사

 

 

질문, 대화, 토론이 없는 한국사회가 중독을 만든다. 게임중독 스마트폰 중독에 빠진 가정에는 가족 간의 대화가 줄었거나 대화의 시간이 없다. 스마트폰에 빠져서 식사 시간도 가족 간의 대화보다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식사하고 먹을 것을 다 먹으면 그냥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스마트폰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은 삶을 살펴보면 꿈도 비젼도 없다. 학교공부는 부모가 해라고 해서 하고, 좋은 성적이 나오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가 시키니까 한다는 정도의 생각만 하고, 정말 중요한 인생에 대한 질문은 전혀 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삶에 대한 질문인 왜, 어떻게, 무엇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은 학교와 직장에서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학교에서 기업에서 특강이나 수업을 마친 후 선생님이나 강사들은 청중이나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오늘 배운 것 중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해 보세요” 그러면 좀처럼 대답하는 학생이 없는 것이 한교현장의 현실이다.
 
2010년 11월 G20 폐막식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예정에도 없던 질문 기회를 개최국인 한국 기자들에게 주었는데, 뜻밖의 질문권을 받아서 당황했는지 한국기자들은 눈치만 보고 아무도 손을 들고 질문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이 짧은 영어실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국어로 질문하면 통역이 준비돼 있다”는 친절한 부연설명까지 하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하라고 유도했지만 하지못해 결국 중국기자에게 질문권이 넘어갔다.
 
질문과 대화, 토론이 없는 문화는 중독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개인도 가정도, 학교도, 기업도 중독의 심각성에 대해 들어서는 알고 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종교는 앞장서서 삶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게 한다. 교회의 신앙교육은 주입식이 아닌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했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으며, 범죄한 아담에게 “왜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물으셨 듯, 하나님은 언제나 질문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생각을 묻고 있듯, 우리들도 역시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학부모여러분!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중독이나 게임중독에 대해 빠졌다고 고민하기 보다는 먼저 중독에 왜 빠졌는지,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빠진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규명한 후 그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1. 창의적인 신앙교육이 아이들을 살립니다.
창의적인 신앙교육이란 바로 생각하는 근육을 키워주는 신앙교육이다.
 
왜 유대인 중에 노벨수상자가 많을까요. 왜 유대인 중에 창의적인 사업가가 많을까요?
 
작년 노벨상 수상자는 11명이었는데 그중 3명이 유대인으로 약 27%의 비율인데 흥미로운 점은 역대 수상자를 모두 합쳐도 이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인구는 약 830만명이며, 디아스포라까지 포함해도 약 1500만명 정도, 전 세계 인구 75억명 중 약 0.2%에 불과한 인구지만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찰리 채플린,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모두 유대인이다.
 
한국 학생들의 평균 IQ와 공부 시간은 세계적이지만 창의성은 몹시 뒤떨진다. 왜 그럴까? 문제는 교육 방식에 있다. 한국의 교육은 지식을 외우는 공부, 이를 평가하는 점수 따기와 등수에 치우쳐 있다. 한국 학생들은 시험을 위해 외우고 시험을 보고 나면 잊어버리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유대인들의 교육방식은 질문과 대화 중심의 하브루타이다. 하브루타는 나이나 성별, 계급에 관계없이 2명이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는 교육방법이다.
 
또 하나는 하브루타의 원동력이 되는 쉐마 교육으로 쉐마란 야훼의 말씀을 듣고 배운 그대로 생활에 실천하는 방법이다. 쉐마 교육은 유대인들이 2천여년간 세계 각처를 떠돌면서도 지켜온 정신으로, 배운 것을 실천하는 쉐마 정신은 하브루타 교육의 근간이 된다.
 
한국사회나 한국교회가 유대식 하브루타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지만, 신앙교육에 있어서 하브루타의 개념을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중독으로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질문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무엇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신앙교육을 통해 중독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2. 4차 산업시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질문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4차 산업시대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이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고 검색하고 처리한다. 사람은 인공지능처럼 수십억개의 정보를 기억하거나 저장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번에 수 많은 정보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없다. 그렇나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질문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질문하는 방법은 2W1H를 통해 가능하다.
2W는 why(왜)와 what(무엇)이며, 1H는 how(어떻게)입니다.
 
이것을 적용해 보면 내가 왜 게임중독에 빠졌으며, 내가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내가 왜 꿈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 당장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끊어야 할지를 스스로가 답을 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부모나 가족들이 어떻게 라는 질문을 같이 고민하면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how에 대한 방법을 찾아가도록 해 주어야 한다.
 
생각하는 힘을 키위기 위해 2W1H라는 질문을 스스로가 하고, 부모와 함께 대화를 통해 나누면서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 나가다보면 중독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나아가 이런 노력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결실을 맺게 될 것으로 본다.
 
 

3.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스마트폰 중독, 게임중독은 습관에서 비롯 된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그 호기심이 악습관이 되어 삶의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위험한 악습관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작은 악습관이라고 무시하고 인생을 무너트리지는 않지만 그 습관이 오래되면 인생을 무너트린다.
 
로키 산맥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코이아 나무가 있다. 무려 2천년 된 나무로 산불, 홍수, 폭풍, 가뭄 등을 잘 견뎌 냈지만 몇 년 전 세코이아 나무에 조그만 풍뎅이 한 마리가 알을 깠기 시작한 후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그러나 수십 수백 마리가 되자, 또 이듬해 수천 수만 마리로 불어났고 풍뎅이들이 껍질을 망치고 나무속까지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 후에 결국 세코이아 나무는 쓰러지고 말았다.
세코이아 나무를 쓰러뜨린 것은 폭풍우가 아니다. 산불이나 홍수가 아니다. 가뭄을 견디지 못해 쓰러진 것도 아니다. 풍뎅이 한 마리에 의해 쓰러졌다. 별 것 아니라 생각되는 것들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다. 나쁜 습관 하나가 인생을 쓰러뜨린다.
그것이 나쁜 음악일 수도 있고, 음란 비디오일수도 있으며, 음란사이트와 스마트폰 중독일 수 도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지금 당장 우리를 망쳐 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지도자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질문하면서 기도했듯,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인이 될 때 변화가 시작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