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예배관
엘드림교회 임병재 목사
지난 2019년도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강타하며 인류 사회 전반의 생활양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이전의 일상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은 불가능해졌고, 개인과 개인과의 만남 뿐 아니라 공공의 모임이 금지되거나 제한을 받게 되었다. 이에 한국 교회는 현장 예배 금지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게 되었고, 그에 대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대면 예배에서 비대면 온라인 예배로 대대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 교회는 불과 1년 만에 기존의 예배당 중심의 신앙에서 디지털 언택트 비대면 신앙으로 영적 흐름이 급속히 뒤바뀌어져서 기존 성도들의 신앙관과 예배관에 큰 영적 혼란을 야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금번 주제는 코로나 시대에 예배관을 다루어서, 현재 이루어지는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어떻게 수용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성경적 기준으로 정의함으로서, 자칫 비대면 예배로 흐트러질 수 있는 한국 교회의 예배 중심의 신앙관을 고수하며 재정립하고자 한다.
1. 예배의 정의
예배가 신앙생활의 정수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간 한국 교회는 예배 중심으로 성도들을 목양하며 성장해왔다.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란 생명과 같은 것이며, 영혼의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의 예배관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예배란 과연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 정의하고, 정의된 예배의 가치관을 어떻게 코로나 시대의 예배에 구현해야 할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1) 성경적 의미
예배에 관련해서 성경에는 여러 단어가 등장하나, 그 중 대표적인 몇 단어들을 통해 예배에 관해 정의하고자 한다.
하나님과 입맞춤(πρσκυνηω 프로스큐네오 요 4:20)
신약 성경에 예배로 번역된 대표적인 말씀은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의 여인과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프로스큐네오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무릎을 꿇고 주인에게 입 맞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배란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중에 그 분과의 입맞춤으로서 예배자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경외심과 친밀감을 함축하고 있다.
봉사와 섬김(λατρεια 라트레이아 롬 12:1)
예배와 관련한 또 하나의 단어는 롬 12:1로 잘 알려진 라트레이아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노예를 의미하는 단어로 당시 노예의 노동이나 봉사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그 의미가 확대되어 하나님을 향한 섬김과 봉사를 가리켜 예배로 지칭하게 된다 (롬 12:1). 이처럼 예배란 그리스도의 종이 된 성도들이 하나님께 봉사하며 섬기는 것을 지칭한다. 이는 구약의 사상과도 일치하는데 예배를 지칭하는 단어는(출 15:25-26 아보다 הדובע) 일하다라는 아바드(דבע)에서 나온 말로서 예배는 곧 섬기며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도의 교제 (κοινωνια 코이노니아 요일 1:7)
다음으로 예배에 관련하여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특색있는 단어는 잘 알려진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성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요일 1:6, 고전 1:9, 고후 13:13)와 함께 성도와의 교제(요일 1:7)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 이들은 이제 서로 형제자매로서 사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코이노니아는 좋을 것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갈 6:6)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이처럼 성도의 교제는 예배의 한 부분으로 기독교 신앙고백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사도신경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살펴본 바와 같이 기독교에 있어서 예배는 어떤 종교 형식이나 예식 행위는 물론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숭경심(崇敬心)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인격적 만남을 가지는 가운데 하나님과 성도를 향한 봉사와 섬김으로 하나님과 성도간의 신적 교제를 이루는 것이 광의적 의미의 기독교의 예배인 것이다. 그래서 예배에 참여했다는 것은 단순히 예배 예식을 보고 동참했다는 의미보다는 예배자가 하나님과 성도간의 신적 교제에 동참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예배자는 단순히 예배 의식을 바라만 보는 관망자로서가 아니라, 예배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과 성도들과 함께하는 참여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정의 아래에서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비대면 예배 중에 어떻게 예배의 본질을 구현해야 하는지가 코로나 시대에 한국 교회에 중요한 사명이 되어 있다.
(2) 예배의 형태 : 예수님의 가르침 (요 4:23)
비대면 온라인 예배에 관련해서 논의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예배를 예배당이 아닌 온라인으로 드리는 것이 과연 성경적으로 합당한가에 관한 것이다. 온라인 예배는 예배시간과 예배당이라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허물어 버렸다.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자는 온라인만 있으면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 예배가 보편화 되면서 과연 예배당이 아닌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가 올바른 것인가에 관해 논란이 일게 되었다. 온라인 예배는 임시적이고 한시적 예배일 뿐 예배당 중심의 예배가 참 예배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4차 AI 산업 혁명 시대에 앞으로는 온라인 예배를 중점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관해 예배 장소에 관해 성경의 가르침 살펴보면서, 예배는 예배드리는 장소의 문제가 아닌 예배의 본질에 집중해야 함을 살펴보고자 한다.
예배는 장소가 아닌 본질이 중요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선지자임을 깨닫고 던진 첫 질문은 예배의 장소에 관한 문제였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20)’.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예배의 장소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요 4:21) 말씀하였다.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을 말씀하셨다 (요 4:23-24). 예배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를 한다면 예배의 장소는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님을 언급하신 것이다.
영과 진리의 예배
예배는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드렸는지가 중요하다. 예배의 본질인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렸다면 예배의 장소는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배 인도자로서의 영과 진리의 예배
영과 진리의 예배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영이신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말씀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하셨던 것처럼 (행 10:44), 예배의 인도자는 본질로 돌아가 철저히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진리를 선포할 때, 말씀의 영이신 성령이 임재하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되는 것이다.
예배자로서의 영과 진리의 예배
영과 진리의 예배의 또 다른 측면 하나는 예배드리는 예배자로서의 영과 진리의 예배이다. 영은 전인격을 지칭한다. 그리고 진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씀한다. 곧 예배자로서의 영과 진리의 예배는 전인으로서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 드리는 예배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온라인 비대면 예배를 평가할 때, 예배 장소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인 영과 진리로 예배드렸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비대면 예배에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성령의 임재가 있고, 예배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전인격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비대면 온라인 예배라 하더라도, 영과 진리의 예배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비대면 온라인 예배가 결단코 예배를 소홀히 대하거나, 영적 나태함의 핑계거리가 될 수 없고, 우리는 비대면 예배 중에서도 더욱 영과 진리의 예배를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3) 소결
이처럼 예배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전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성도와의 교제로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코로나의 사태로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이와 같은 예배의 본질을 온라인 예배 가운데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비대면 온라인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며 찾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어떤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지, 또 비대면이라는 제한된 예배 환경이 과연 현장 예배에서와 같이 예배의 교제와 교통을 이룰 수 있는 것을지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2. 코로나 시대 예배관
코로나로 인해 한국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간의 친밀한 만남으로 나누는 교제를 사실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목회자와 성도 간의 직접적인 만남은 적어지고, 온라인으로 타교회 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다보니, 지교회의 성도 이탈이 가속화 되고, 또한 성도간 교제의 부재로 인해 성도들은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이 많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비대면 온라인 예배로 유지한다고는 하나, 교회의 본질인 성도간의 교제가 전무한 상황에서 한국 교회의 영적 결속력은 날로 약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더욱 시급한 문제는 신앙의 대를 이어갈 다음 세대이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 경험이 적은 아이들은 과연 오늘날과 같이 넘쳐나는 각종 미디어를 접하는 중에 과연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예배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코로나 시대에 한국 교회의 영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들을 믿음으로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인가?
정답은 종교개혁가들이 추구한대로 본질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ad fondes). 위기의 순간일수록 우리는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비대면의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예배의 본질을 추구해 간다면, 비록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라 하더라도 한국교회의 생명력은 꺼지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될 때에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한 한국교회는 다시 부흥의 때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1) 비대면 예배 가운데서 예배 본질 추구
비대면 예배로 예배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은 현장 예배를 드릴 때 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비대면 상황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를 인도하고 예배에 참여하려 한다면, 대면 예배 이상의 형식과 모습으로 정성과 준비를 다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예배 인도자는 영과 진리의 예배로 인도하기 위하여 더욱 말씀에 충실한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혼을 살리고, 영혼을 붙들 수 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때, 성도들은 세상의 소리와는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며,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으로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서도 온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참여하게 되는 참 예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배자 또한 말씀과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구하는 가운데 온라인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자에게 현장 예배보다 더욱 경건이 요구되는데, 예배자는 비대면 온라인 예배 속에도 하나님 면전에 있다는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의 형식에도 충실해야 한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형식이 깨지면 내용도 흐트러지게 된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드려지는 예배의 형식에 자신의 신앙을 정성스럽게 담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온라인 예배라도 주일에 교회 갈 때 입는 좋은 옷을 입고,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처럼 주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며 큰 소리로 찬양하고, 헌금시간에도 정성을 다해 온라인으로 헌금도 드리며, 선포되는 말씀 중에 아멘으로 크게 화답하며 온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 예배 후에는 온 가족이 말씀의 교제로 서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또 말씀대로 살도록 결단하며 기도한다면, 비록 온라인 비대면 예배라도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되어, 하나님이 찾으시며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성도간의 교제와 헌신의 중요성
또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배드림에는 반드시 성도의 헌신과 교제가 함께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하나님과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한 헌신과 성도와 교제로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닌 참여하는 것이며,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닌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도에게도 자신을 나눔으로 참 예배가 된다. 이처럼 예배는 일방통행이 아닌 서로 교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대면 온라인 예배는 자칫 예배자가 예배를 보는 것에만 그치는 일방적인 예배가 되기 쉽다. 예배자 본인만 은혜 받으면 된다고 여기는 편의주의 이기주의의 예배가 되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예배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며, 성령의 은혜로 성도가 서로 교통함을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에는 말씀으로 주어지는 은혜를 하나님과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것까지 나아갈 때에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생활에 철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로 고백하며 드리는 예물로 예배자는 하나님과의 교통의 예배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또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온라인으로 서로 나누는 성도의 교통을 위해 힘쓸 때에 참다운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상황에서라도 성도들이 영적으로 하나되기를 힘쓰며 서로 교통할 때에 그러한 비대면 예배가 온전한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대면 예배 상황에서 온 교인들은 예배당 예배 때보다 더욱 영적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총회 차원에서 실시하는 하루 한 번 예배당 찾기는 예배의 회복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인 운동이다. 또 특정 시간을 정해 온 교인이 함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중보기도 모임으로 목회자를 위해 기도함으로 성도간 신령한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도 비대면 상황에서 온전한 예배자로 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 코로나 이후 대처 (예배당 회중 모임 중심으로)
코로나 사태는 한국 교회에 예배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신앙생활을 현장 예배 중심에서 디지털 비대면 온라인 중심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전염병으로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신 은혜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예배는 예배당에서 드리냐 아니냐하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본질이 중요함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예배의 본질의 측면에 있어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현장 예배로 함께 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에 훨씬 더 충실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가 종식되고 코로나 이전처럼 일상적인 생활과 모임이 가능해 진다면, 현장 예배를 중심으로 예배당 예배가 다시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의 신앙회복에 집중하여서, 예배의 틀과 형식을 잃은 어린 자녀들을 예배당 중심의 예배로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하도록 가르치며 인도하는 일이 시급하다 할 것이다.
더불어 비대면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모임의 긍정적인 면도 함께 예배의 보조수단으로 채택하여, 부득이 현장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성도들과 환우들을 위해 온라인 예배를 제공하고, 또 바쁜 현대 생활로 성도의 교제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줌(zoom)등의 가상 모임을 마련하여 교회 차원에서 예배의 완성으로서의 성도의 교제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4. 예배당 중심의 예배의 성경적 근거
이처럼 신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예배는 예배당 중심으로 대면 예배로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회중이 현장에 함께 모이는 예배당 중심의 신앙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이유에 관해서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구약 성경의 가르침
구약성경은 특별히 온 회중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예배드리도록 가르치고 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의 예배를 허용할 것인가 아닌가를 참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다 (왕상 15:14, 왕하 14:4, 15:4 등). 그럼 구약 성경에 나타난 회중 예배에 관한 몇몇 단어들을 살펴보며, 구약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예배의 모습을 살펴본다.
장막 (帳幕 미쉬칸 ןכשם Tabernacle)
장막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만들게 하신 성소(출25장)이다. 장막을 지은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셔서, 하나님의 임재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출 25:8). 장막이라고 번역된 [미쉬칸]이라는 단어는 장소를 뜻하는 [ם미]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내는 말인 [ןכש셰키나](하나님의 임재)의 합성 단어이다. 그래서 장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장소를 뜻한다.
회막 (會幕, דעום להא,오헬 메오드 Tent of meeting)
장막의 또 다른 명칭은 회막이다. 모이는 장막이라는 뜻의 회막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를 만나, 자신을 계시하시는 장막을 말한다 (출 29:42,44). 이 단어 역시 장막을 뜻하는 오헬(להא)과 장소를 뜻하는 메오드(דעום)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는 장소를 뜻한다.
회중 (會衆, להכ 카할, Congregation)
회막의 다른 명칭이 회중을 뜻하는 카할(להכ)이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총회를 지칭하여 (신 31:30) 함께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총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르심 받아 회집된 사람들의 집단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특히 타자와 구별되는 무리임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εξλησια)와 같은 단어이다.
이처럼 구약 성경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장막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택하여 온 회중이 모이는 것으로서 성사시켰다. 성소에서 모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구별된 특별한 무리 곧 회중이라는 의식을 가졌고, 그 장막의 모임 중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다. 그리하여 시편에서 회중이 모이는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이 다스림이 있는 궁정으로 비유되어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사모함의 대상이 된다 (시 84:1-2)
(2) 신약 성경의 가르침
교회 (敎會, εξλησια, 에클레시아 마 16:18)
교회라고 번역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신 공동체를 말한다 (마 16:18). 에클레시아는 어느 특정 무리를 '불러냄'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집회의 대중, 회합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보활로 예루살렘에는 예수를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게 되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 공동체는 중요한 특징은 하나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교제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는 것이다 (행 2:46). 그 후 유대교에 의한 기독교 박해로 인해 유대교 성전으로 모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도, 흩어진 교회는 각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의 모임을 이루게 된다 (행 8:3). 그리하여 초대 기독교인들은 모이기를 힘쓰는 것으로 그들의 종말론적 신앙을 확인하게 되었다 (히 10:25).
신약 성경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공동체를 교회라고 지칭할 때, 교회를 부름을 받아 모인 모임 곧 집회의 회합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교회의 일원이 된 초대교회 성도들은 회중으로서의 모임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게 되었다. 이렇게 초대 교회의 중요한 특징은 회중으로서의 모임과, 회중의 모임으로 성찬을 나누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모이기를 힘쓰는 중에 나누어지는 하나님과 성도, 성도와 성도간의 신적인 교제가 후에 종교개혁의 만인제사장 이론의 토대가 되어, 개혁교회는 회중으로서의 성도의 모임을 적극 독려하게 된다 (벧전 2:2-5).
(3) 소결
이처럼 신구약 성경은 특정한 장소를 지정하여 성도가 힘써 모이도록 가르치고 있다. 모임의 근거는 하나님의 신적 부르심(카할, 에크레시아)이다. 이 부르심에 응답한 성도는 장막과 예배당을 예배와 교육, 교제와 헌신으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은혜를 서로 나누는 신적 교제(코이노니아)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총회와 교회는 특정 장소에서 회중의 모임을 통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임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방의 제사장 사명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지상 사명의 대과업을 수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신구약의 가르침과 초대교회의 본을 따라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예배당을 중심으로 서로 모이기를 힘써 하나님께 예배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서로 나누는 교제를 통하여 교회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것이 교회의 근본이 되며 설립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예배당 중심의 회중 모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의 전통을 분명히 인식하여, 현재 코로나로 인해 약화되어 있는 예배당 중심의 신앙관을 다시금 확고히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지상교회를 통하여 뜻하신 은혜의 지경과 선교 사명을 확장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5. 결론
한국교회는 지난 일 년 동안 코로나 사태로 큰 영적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일제의 식민지 상황과 6.25 전쟁 가운데에서도 중단되지 않았던 예배가 코로나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또 예배가 마치 코로나의 진원지인 냥 각종 조롱과 비난을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은총을 베푸셔서 임시적으로나마 비대면 온라인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제한적으로나마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이러한 비대면 온라인 예배가 아예 한국 교회의 예배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에 따른 상당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예배자가 아닌 예배의 관람자가 되어,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한 사역과 헌신의 열정은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편한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조금의 핑계거리가 생겨도 현장 예배에 대신 온라인 예배로 드리는데 있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게 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지난 일 년의 시간이 한국 교회가 그간 목숨처럼 여기며 지켜왔던 예배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 속에서 온라인 비대면 예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비대면 온라인 예배 상황에서도 예배의 본질만큼은 절대로 잊지 말고 지켜 나가야 한다. 예배는 성도에게 있어서 호흡과 같은 것이며 생명이다. 예배의 본질을 잃어버린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뿐 아니라 예배드리는 성도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과 성도와의 교제인 것이다. 이 교제는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대면 온라인 예배라는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이 때에라도 우리는 더욱 더 예배의 본질을 붙드는 예배자로서 예배드려야 한다. 온라인의 예배의 관람자가 아닌 신령한 예배의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말씀을 선포하여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구하여야 하며, 예배를 위해 예배자는 전인격을 담아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성도간의 신령한 교통을 이루기를 위해 노력하며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무엇보다 가슴깊이 유념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비대면 예배는 결코 현장의 대면 예배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상의 하나님께 최상의 예배를 드리려는 순교자적 신앙관을 가진 이들에게 선택적으로 드리는 온라인 예배는 결단코 온당하지 않다.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는 현장에서 오감으로 드리는 예배의 은혜를 절대로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교회의 전통은 분명히 우리에게 모이기를 힘쓰라고 가르치고 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과 성도와 신령한 교제와 교통을 이루어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예배야 말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며 참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라는 이 기나긴 영적 터널 속에서도 한국 교회가 예배의 본질만큼은 결단코 놓지 않으려 몸부림친다면, 한국 교회의 생명력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며, 대면예배가 회복되는 때에라도 온라인 예배라는 비정상적인 예배 형태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 참 예배를 사모하는 이들로 예배당의 현장 예배의 열기가 한 층 더해지는 중에, 우리는 우리 다음 세대에 신앙의 정수를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며,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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